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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21 산책의 기억. (4)
2006/11/21 10:37
제법 쌀쌀하게 느껴지는 공기가 내려앉는다. 살갗이 추위에 신음하며 바르르 떨리고, 저도 모르게 내뱉은 숨결이 하얗게 맺혀 흩어진다. 걸음을 옮기는 길가의 좌우에는 불쾌한 네온들이 번쩍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눈을 찌르는 인공광. 괴롭다. 밤이 깊은 도로를 스쳐가는 차들은, 낮과는 다른 종류의 소음을 뿜어낸다. 귓가를 찔러오는 속도감의 소음. 괴롭다.

어린 시절부터 산책을 참 좋아했다. 특히나 밤산보─를. 그리고 내가 그런 습관을 갖게 된 것은, 지금 살고있는 곳에 이사오기 이전 살았던 곳이 조용한 동네라는 것이 틀림없이 그 이유일 것이다. 12년간을 살아왔던 은평구는, 서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고요한 곳이었다. 대로에서부터 좁은 2차선 도로를 따라서 5분. 주택가를 주위에 내려다보며, 한 동짜리 특이한 아파트가 그곳에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을지는 모르겠다. 12층의, 그다지 높지 않은 아파트이기는 했지만 주변 주택가 사람들에게는 전경을 해치는,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곳이 참 좋았다. 밤중에는 지나는 차도 몇 대 없고, 야트막한 야산이 뒤편에 늘어선, 그런 곳이었다. 조용했다. 그러한 분위기를 10층 높이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발을 옮겨 바깥으로 향하곤 했다. 가로등의 빛만이 거리를 밝히고, 출입이 금지되어있었기에 제멋대로 자란 야산의 내음이 흘러오는 그 고요한 거리를 걷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대학에 들어오고, 담배를 배운 이후로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도 걸었지만, 어쨌거나 그곳은 내가 참 좋아하는 곳이었다. (그러고보니 수능 전날에도 기분 전환 겸 해서 한 시간 정도 동네거리를 걸으며 즐거워했던 것 같다)

여유를 갖고 밤에 걷는 일. 소소한 즐거움이었던 그것을 하지않게 된 것은 지금 동네로 이사온 이후부터였다. 걸을 곳이 없었다. 대로변에 접해있는 아파트. 골목으로 걸음을 옮겨도 코를 찌르는 불쾌한 도시의 악취. 평온함도 여유도 아늑함도, 아무것도 없었다. 간신히 발견한 괜찮은 산책 코스인 예술의 전당(...)조차,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네온과 도로의 소음을 견뎌낸 후에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깨닫지만, 그 밤산보는 내 나름의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여름에는 시원함을, 겨울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뼛속을 파고드는 냉기를. 내 나름의, 자연과 공기와 사방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재생의 시간이었다.

조용한 곳이 없다. 마음 편한 곳이 없다. 그나마 괜찮은 곳을 발견하면, 그곳은 가기가 힘들거나, 그곳을 찾아온 다른 이들로 인해 아늑함을 보장받을 수 없다. 현재의 생활공간은 참 마음에 들지만, 가끔씩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예전의 상쾌한 거리의 호흡이 그립다.
Posted by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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